[멋진 인생]은 가슴 따뜻해지는 명작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꽤 어두운 영화이다.
우선 이 영화를 기점으로 프랭크 카프라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카프라의 영화는 얼핏 보면 지역사회의 인정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찬양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선동에 의지하고 거기에 주변 인물들이 감화를 받아 급격한 변화를 겪는 걸로 갈등을 해소한다.
이상적인 주인공에게 냉소적이던 여자는 사랑에 빠져서 직업에 사적 감정을 투사하고, 악당은 개심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해피 엔딩을 이끌어내기 위해 천사(정확히는 2급 천사)까지 집어 넣는다.
주인공 제임스 스튜어트는 여전히 사람 좋은 이웃, 자상한 가장을 연기하지만, 실상은 자기연민에 빠진 중년남자이다.
스튜어트는 체중 미달로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자 다시 도전해서 입대했지만 평생 전쟁 체험에 대해 침묵했다는 데,
전쟁에서 돌아온 뒤 처음 찍은 이 영화에서는 그가 후일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안소니 만 영화에서 보여준 우울함이 느껴진다.
당대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외면한 데에는 이런 영화 밑바닥에 깔린 어둠을 감지해서가 아닐까?
[멋진 인생]은 대체역사(what if)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SF물의 성격도 갖고 있다.
자기 인생이 실패였다고 생각한 조지 베일리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게 된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존재하지 않아서 생겨난 비극들(동생의 죽음, 과실치사범이 된 약사, 환락가가 된 고향 등)이 전적으로 그의 부재 때문일까?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런 불운들이 긍정적인 변화의 시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Okies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서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여유있는 삶을 살았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를 인간이 판단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새옹지마' 고사에 나오는 노인처럼 달관하긴 힘들겠지만, 너무 낙관할 필요도 비관할 이유도 없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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