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검열은 존재할까? 영화


며칠 전 [시계태엽 오렌지]를 언급했다가 정은임이 떠올랐다.
그녀는 생전에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했는 데, 매주 화요일마다 정성일이 출연했다.
여기서 정성일은 [시계태엽 오렌지]가 영국에서 상영금지 당한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본인은 검열을 반대하지만,
2. 영국은 '알렉스에 대한 정부의 치료법이 전제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게 할 수 있는 위험'때문에 상영금지 명령을 내렸고,
3. 여기에는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깔려있다.
4. 한국은 이런 수준 높은 검열을 못한다.


정성일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BBFC(영국 영화심의위원회)는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지 않았고, 일부 장면 삭제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 개봉 후 청소년들의 모방범죄가 일어나서 감독에게 비난이 쏠리자, 큐브릭이 상영중지를 요청한 거다.
이건 요즘처럼 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정성일은 예전에도 '[저수지의 개들]은 강도들이 한 명씩 의심스런 공범을 죽이는 블랙 코미디'라거나,
'[탱고와 캐쉬]에 실베스타 스탤론과 패트릭 스웨이지가 나오는 영화'라는 실언을 한 바 있다.
(후자는 [로드 쇼]에서 사진까지 올리고 한 말인 데, 나중에 '둘이 너무 닮았는 데, 이복형제?'란 개드립까지 쳤다.)

어쨌거나, 이건 정보부족으로 인한 실수라 쳐도, 그 다음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성일은 검열은 나쁘지만 불건전한 메시지(전제주의도 좋은 점이 있다)가 들어있는 경우는 불가피하다는 변호를 했다.
그런 식으로 나쁜 검열, 좋은 검열(or 불가피한 검열)을 나눈다면, 어떤 경우에 검열을 허용해야 할까?
군사정권 시절에 벌어진 숱한 검열들도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기준도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원장과 궁예는 자기만 알고 있는 심오한 이해와 명분을 내세우며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저질렀다.)
이런 식의 이중잣대는 결국 내로남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미국처럼 연령별로 등급제를 실시하고, 성인들에게는 모든 걸 허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정치, 섹스, 폭력 모든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발언하고, 상대방에게도 발언기회를 보장하는 거다.
지금 PC들이 욕을 먹는 게 '자기들은 정의롭고 현명하지만, 상대방은 사악하고 멍청하다'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PC.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지금도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지만, 아직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