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수필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어느 미국인이 한국 술집에 갔다가 계산하면서 호스테스에게 팁을 줬다.
액수가 마음에 안 든 호스테스는 돈을 돌려 주며, '이 돈 아껴서 아이 장난감이라도 사주세요'라고 말했고,
그녀의 빈정거림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미국인은 '땡큐'를 외치며 돈을 돌려 받았다.
기분 나쁘면, (일부라도 챙기는 게 이익인 데도) 'All or Nothing'을 외치는 게 한국인이라는 설명이였다.
그런데, 이 말은 '기분만 맞춰주면, 손해보는 일도 기꺼이 하는 게 한국인'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오래 전에 스튜어디스들이 쓴 책에서 스튜어디스의 실수에 나라별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승객들이 나왔다.
일본인: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릴 때까지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미국인: 웃으면서 스튜어디스를 위로해서 추가 서비스를 받지만, 나중에 본사에 따로 연락해 보상을 받는다.
한국인: 벌컥 큰 소리로 화를 내지만, 서비스 음료를 주면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금방 풀어진다.
요컨데, 한국인은 그 때의 기분, 주변상황, 체면 등에 따라 상이한 반응을 보인다.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다양하고 애매하니, 대응하기도 까다롭다.
'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안 한다.'는 속담처럼 흥이 나면 실속 없는 일도 신나서 하지만, 흥이 깨지면 손을 놓는다.
어떤 계약이나 합의를 한 후에도 번복하는 일이 잦은 건 이런 성향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는 서양의 기독교같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믿음이나 사상이 없고,
일제, 한국전쟁,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지역사회가 해체되고 급격한 사회이동이 이뤄진 것도 그런 성향을 강화했다고 본다.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하다 보니, 한국인들은 자연히 가족을 중시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만났을 때 나이를 묻거나 식당에서 종업원을 이모라 부르는 건 유사 가족관계를 만드는 행위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경향이 약화될지 오히려 강화될지 의문이다.
한일양국이 합의를 본 후에도 계속 뒷말이 나오는 데에는 이런 국민성도 작용했다고 본다.
일본에도 그런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위에서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다.
일본영화에는 상부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반발하는 주인공의 직속 상관은 '우리의 리더도 동의했으니 참으라'고 억압한다.
이제 주인공에게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가 남아 있다.
분노가 폭발해서 조직과 싸우다 자멸한다. (주로 사무라이나 야쿠자)
조직논리에 잠자코 순응한다. (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조직을 떠난다. (실업자 확정)
'일본인은 단결을 잘 하는 데, 한국인은 그러지 못해서 글렀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 데,
이는 세포처럼 작은 집단이 모여서 더 큰 집단을 구성하는 일본의 복잡한 조직문화를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한국이 급격하게 변해서 불안정성이 높다면, 일본은 변화를 거부해서 서서히 쇠퇴해 갈 위험이 크다.
'Adapt or die.'라는 말은 쉽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도 일본도 쇠퇴기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거울 삼아 자신을 돌아본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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