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하면 떠오르는 악역들..... TV 통신


[스크린]에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I Spit on Your Grave)] (1978)를 표절한 [야누스의 불꽃여자] 촬영장 취재기사를 읽었다.
거기서 나영희를 윤간하는 연기를 한 세 남자 배우들은 '우리가 범죄자를 연기한 횟수는 국내 최고'라는 자학 개그를 했다.
그 중 한 명이 송경철이다.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근육질로 주로 깡패 역할을 많이 맡았는 데, 실제로 고등학생 시절 깡패수업(!)을 받다 관뒀다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수사반장] 악역으로 써 먹으려고 MBC 공채에 합격됐다는 데,
무서운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수다스럽다는 게 그가 젊은 시절에 연기했던 악당들 특징이다.
그 말이 맞는지 [수사반장]에서 자주 악당으로 나왔는 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에선 피살자로 나온다.

[당신과 마지막 춤을]에서 살해당한 제비로 출연했는 데, 수사팀은 주변 용의자들을 탐색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그에게 유혹 당한 가정주부.
취조 도중 경찰서로 달려온 남편과 수사반장은 대화를 나눈다.

반장: 부인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남편: 죽이고 저도 죽여야죠. 전처도 춤바람 때문에 이혼했는 데, 같은 일을 반복하긴 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하는 춤선생.

선생: 그는 춤을 더럽혔기에 제가 살해했습니다.

결국 찾아낸 진범은 피살자와 동거하던 여자.

여자: 그 여자는 제발 보내 줘. 내 전남편과 결혼한 여자야. 내 아이들을 엄마 없는 자식으로 만들 순 없어.
제비: 으하하, 이런 우연이! 나한테 맡겨, 내가 제대로 복수(!)해 줄게.


자신이 망친 가정을 또 깨뜨리기 싫어서 제비를 살해한 것.
체포되기 직전, 춤선생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마지막 춤을 청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피살자로 등장한다.
가게를 여럿 거느린 개인사업자가 피살당한다.
이어지는 과거 회상 (대체 누구 시점인 걸까?)
송경철은 감방에서 친구가 되어 같이 출소한 이계인 집에 신세를 진다.
이계인의 여동생을 보고 반해서, 오빠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다.
외국에 돈 벌러 나갔다 한국에 돌아온 이계인은 잘사는 여동생 부부를 보고 흐뭇해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자 가정을 내팽개치고 바람을 피우고, 여동생은 사라진다.
여동생이 죽은 줄 알고 눈이 뒤집힌 이계인이 술 취한 송경철을 죽였지만,
실은 여동생은 살아있었고 자기 때문에 오빠가 살인범이 되자 음독자살을 한다.
(오류를 알려주신 이웃분께 감사 드립니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안 이계인은 형사에게 절규한다.
'나를 죽여줘요. 가족들이 다 죽었는 데 나 혼자 살아서 뭐 하겠습니까'

송경철은 한강에서 제트스키를 타다 사고를 당한 뒤, 사업부도와 부친상을 겪는 아픔을 겪었다.
휴식을 취하러 간 필리핀에서 리조트 사업으로 성공했고 유일한 친구 이덕화 덕분에 배우로도 컴백으니,
사람 팔자는 시간문제라는 게말이맞는 것 같다.
2012년 KBS 연기자 출연료 미지급 때, 본인 출연료는 받았지만 농성에 적극 참가하고 인터뷰를 한 걸 보면 의리파인 듯 싶다.
나이를 먹으니 험악했던 얼굴도 꽤 부드러워졌는 데, 말년도 편안히 보냈으면 한다.



손창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합격해서, 엉뚱하고 얍삽해도 밉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청춘영화에 나올 때, 이승현에게는 괴롭히다 되려 당하는 선배로 이덕화한테는 민폐 덩어리 동생으로 중간에 낀 존재였다.
드라마에서는 [왜 그러지], [시장 사람들] 등에서 주로 김무생과 호흡을 맞췄는 데,
고용주 김무생이 면박을 줘도 웃어 넘기는 모습이 [서울 뚝배기]의 오지명-주현 콤비를 떠올리게 했다.
뚱뚱하고 이마가 벗겨져서 모자를 자주 썼는 데, 입담이 좋아서 라디오와 예능프로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그런 손창호도 [수사반장]에서 악역을 맡은 적이 있다.
소를 판 돈을 소매치기 당한 시골청년 손창호는 소매치기 집단으로부터 스카웃(?)을 당한다.
순박한 성격이라 주저하면서도 협박에 못 이겨 소매치기가 되었지만, 잃은 돈만 모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 다짐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 다짐은 점점 옅어지고, 술과 여자를 알게 되면서 발을 빼기 힘들어진다.
어느 날, 아들 등록금을 소매치기 당해 자살한 어머니의 기사를 읽고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돌아보지만,
경찰은 소매치기 조직을 급습하고, 피를 흘리면서 돈 뭉치쪽으로 기어가면서 '저건 내 돈이야'라고 말한다.

손창호는 외모의 한계 때문에 조연으로 소비되었지만, 다재다능해서 굴곡 없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결혼 4개월만의 이혼, 영화투자 실패,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연예계를 떠났다.
한참 후에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당뇨병화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행려병자였다.
1998년 8월 5일, 기도원에서 그는 46년의 삶을 마감한다.



송승환은 KBS 아역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지금은 머리가 벗겨져서 데이비드 맥컬럼같은 얼굴인 데, 큰 눈과 발성이 좋아서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하긴 맥컬럼도 30대까지는 미소년이였으니....)

김수현은 그를 아는 건 많지만 일상생활에는 서투른 괴짜로 캐스팅했는 데, 단막극 출연도 꽤 많았다.
[전설의 고향]에서는 납치 당해서 강제결혼을 했는 데, 신부가 문둥병 환자(아직 잠복기간)였다.
문둥병을 옮겨서 치료하기 위해 일면식 없는 송승환을 납치해 신랑으로 만들었다고 신부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팔자니 합방을 하자'는 신랑에게 감동한 신부는 친정부모에게 합방을 했다고 속여서 그를 떠나게 한다.
문둥병에 걸린 신부는 거지가 되어 송승환의 집에 구걸하다 재회하고, 그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같이 살자며 손을 잡는다.
미안함과 시부모의 반대에 신부는 목숨을 끊기 위해 헛간에서 발견한 독사에게 일부러 물린다.
다음 날, 집안 사람들은 독사 시체 옆에 예쁜 여자가 쓰러진 걸 발견한다.
독사의 독으로 문둥병이 치료되었고, 둘이 부부로 살았다는 해피엔딩.

[수사반장]에서는 남성훈이 살인범을 찾기 위해 유랑극단(기억이 가물가물)에 잠입한다.
거기서 송승헌을 만나 체포하지만, 송승헌은 술집에서 취객과 싸워서 잡으러 온 형사로 오해한다.
결국 다른 진범이 잡히고, 송승헌은 자신을 오빠처럼 따르는 여자에게 돌아간다는 결말인 데, 드라마 속 설경이 참 좋았다.

또 하나는 당시에 사회문제가 되었던 슈퍼맨 흉내를 내다 추락사를 한 어린이 이야기.
송승환은 교통사고로 모친을 잃고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청년이다.
(이원용이였던 것 같기도....)
집이 부자라서 여자 가정교사를 붙여주지만, 강간을 시도해서 내쫓는 찌질이.
(은근히 이런 한심한 중산층 아들 역할을 잘 했는 데, KBS [간호병동]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환자로 나왔다.)
아버지가 재혼해서 낳은 이복동생을 미워하는 데, 슈퍼맨 만화책을 보여주면서 너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꼬드긴다.
양 손에 풍선을 쥐게 하고 베란다에서 점프하라고 말하다, 변심해서 뛰어내리려는 동생을 붙잡는다.
이 때 배경음악이 MBC에서 방영했던 [날으는 슈퍼맨, 위대한 영웅 (The Greatest American Hero)] 주제가라서 깼다.
(전영록이 가사를 번역해서 불렀는 데, 전영록은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명견 호보] 주제가도 불렀다.)

손창호가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연출을 전공한 것처럼, 송승환도 90년대 중반 모든 걸 정리하고 미국유학을 갔다.
휘문고에 들어갔을 때 연극부와 방송부에서 서로 스카웃하러 싸울 정도였지만 방송부를 택했고,
연극무대에서도 연출을 선호한 걸 보면 원래 연기보다 연출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도 '연출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어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했었고.....)
비슷한 길을 걸어간 두 사람이 왜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맞았을까?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운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운도 본인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노력해도 당장 성과가 나오진 않지만, 그게 쌓이면 큰 차이를 만들고 최소한 패가망신은 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