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1961년 ~ ), 김정훈 (1961년 ~ ), 강주희 (1961년 ~ )
영원한 얄개 이승현은 1966년 어머니의 친구가 충무로에서 운영하던 여관에 놀러갔다가, 조긍하 감독의 눈에 띠어 [육체의 길](1967)에 출연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조흔파 소설 [얄개전]을 영화화 한 [고교 얄개] (1976) 에 출연하면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TBC [정의의 번개돌이] (1978)에서 장난꾸러기지만 왜적과 싸우는 양반집 도령으로 나온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데, 이 어린이 드라마에는 원로배우 오현경씨도 화약 만드는 노인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캐나다 유학, 필리핀 선교 등을 하다 돌아왔지만, 모아둔 출연료는 부모가 탕진했고 이혼, 파산의 굴곡을 겪었다. TV조선 [웰컴 투 힐링타운] (2012)가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다.
김정훈은 네 살 때, 고영남 감독에게 픽업되어 [이 세상 끝까지] (1965)에서 아역으로 데뷔했다. 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미워도 다시 한번] (1968)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되었고, [꼬마신랑*] (1970)으로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엄마, 색시가 내 고추 만져"라는 명대사(!)는 극장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남녀 역할을 바꿨어도 웃을 수 있었을까?) 이후, 십대 시절에는 이승현과 함께 콤비로 등장했는 데, 이승현의 빵 셔틀이나 개과천선을 하게 만드는 모범생으로 등장했다. 화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서 화교학교에 들어간 뒤 대만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자니윤 쇼]에 출연하거나 중국 영화 번역 등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평탄한 생활을 했는 데,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 (2008)에서는 콤비 이승현과 오랫만에 호흡을 맞추었다. TBC [똘똘이의 모험] (1976 ~ 1977)에서는 강수연과 출연했는 데, 새총으로 참새를 잡아 구워먹는 장면 때문에 어린이들 사이에서 새총이 핫 아이템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 조흔파가 김정훈을 모델로 [꼬마전]을 쓴 게 아닐까 추측하는 데, 주인공 김꼬마도 사고 후 배우로서 은퇴를 한다.)
강주희는 [둘째 어머니] (1971)로 데뷔했는 데, [고교 얄개] (1976), [고교 우량아] (1977) 등 얄개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청춘스타가 되었다. [남궁동자] (1977)같은 단독 주연작도 나왔는 데, 당시 진짜 진짜 시리즈의 히로인 임예진과 함께 청소년들의 인기를 양분했다. 임예진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소녀였다면, 강주희는 이상적인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인기는 시들어갔고, 성인 연기에 도전했지만 관객들은 여자가 된 강주희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대학얄개] (1982)를 끝으로 결혼 후 미국 이민을 갔고, 지금은 유기농 레스토랑을 운영한다고 한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청춘스타들은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최유리 (1964년 ~ )
최유리는 [여로(女路)*] (1972)에 출연했지만, 연기자 보다는 TBC [호돌이와 토순이] (1976 ~ 1977)의 진행자로 더 기억에 남는다. 고정 출연자들 중에서 요들송 아저씨 김홍철씨와 윤유선이 인상적이였다. 서구적인 외모라서 인기가 좋았는 데, TBC [고전 유머극장]에서 백설공주로 출연하기도 했다. 10대 시절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1986년 갑자기 돌아와서 KBS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서 팝송을 불렀는 데, 너무 미국물 먹은(!)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1991년 자신을 유학 사기범으로 보도한 7개 언론사들을 고소해서 1년 후 정정보도가 나갔지만, 상처가 컸는지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방송에 출연한 걸 봤다는 사람들도 있던 데, 잘 살았으면 좋겠다.
(* '旅路'가 아니다!)

이영수 (1966년 6월 3일 ~ 2017년 7월 18일)
이영수는 당시로는 흔치 않은 선이 가늘고 착한 모범생을 주로 연기했다. TBC [홈런이다 홈런] (1980)에서는 어린이 야구팀 주장으로 나와서 팀 이름으로 백곰 등이 거론 되다가 하얀 독수리로 하자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은 폐간된 [TV 가이드]에서 이영수가 [고교생 일기] (1983~1986)에서 반장으로 출연해서 '차렷, 경례'를 했지만, 실제 나이가 어려서 다른 배우들이 머뭇거리니까 1살 위인 손창민에게 '창민이 형은 왜 내 말 안들어?'라고 말해서 촬영장 분위기를 풀었다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어릴 때는 곱상한 외모라 인기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게 걸림돌이 되었을까? 황준욱이 주연을 맡은 KBS [별을 쫓는 야생마] (1985)에서는 얍삽한 고교생으로 나왔던 게 마지막으로 기억된다. 세상을 뜬 지 반년이 지나서야 그의 부고가 기사화될 정도로 그는 대중들에게 잊혀진 존재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윤숙 (1966년 ~ )
조윤숙은 여의도 국민학교 6힉년일 때 고영남 감독의 [소나기] (1978)에서 이영수와 출연했다. 총 3편의 영화와 TBC [바람돌이 장영실] (1980 ~ 1981), KBS TV문학관 [을화] (1980)에 출연 후, 부모의 뜻에 따라 연예계를 떠났다. 이대 무용과에 입학했고, 결혼 후 지금은 캐나다에 거주한다고 한다. 어린이 배우들이 성인 배우로 성공한 예가 드문 걸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였다고 생각한다.
이연수 (1970년 3월 7일 ~ )
예전에 따로 포스팅했던 이연수는 MBC [호랑이 선생님] (1981 ~ 1986)에서 부반장으로 출연했다. 같이 출연했던 아이들에 비해 성숙한 미모를 자랑했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한계를 느꼈는지 오랫동안 쉬다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복귀했다. 왕년의 어린이 스타들이 나이를 먹어서도 커리어를 이어가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외모인 데, 귀여운 동안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이 그녀처럼 선이 가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운만 좋았더라면, 20대 시절에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유경아 (1973년 4월 9일 ~ )
귀엽지만 똑 부러지는 계집아이하면 유경아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수줍음 타는 성격을 고치려고 참가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여왕으로 당선되고, 이후 심사위원인 드라마 PD의 권유로 열한 살에 MBC [호랑이 선생님] 3기로 출연했다. 이후 MBC [푸른 계절] (1988), KBS [울밑에선 봉선화] (1990), KBS [맥랑시대] (1991)에 출연하지만, 일찍부터 시작한 연기활동에 회의를 느껴서 미국 유학을 떠난다. 몇 년 후 마음이 바뀌어 연예계 복귀를 하지만, 너무 달라진 방송가에서 생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후, 결혼, 이혼, 우울증까지 겪다 최근에는 생활스포츠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강민경 (1973년 7월 17일 ~ )
강민경은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84)로 데뷔했다. (김수용 감독은 1965년에 연출한 영화를 다시 리메이크했는 데, 원작자 故 이윤복씨는 39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래도 책이 출판되어 헤어졌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다시 찾았던 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녀 역시 KBS [맥랑시대] (1991)에 출연했는 데, 청소부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겨서 친구들에게 숨겼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존슨앤존슨즈 베이비 로션 모델도 기억나는 데, 분홍색이 참 잘 어울리는 미소녀였다. 위에서 언급한, 이연수, 유경아처럼 그녀 역시 선이 고운 미인이라 그런지, 성인 연기자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더구나 주로 맡은 배역이 내성적이거나 다소곳한 소녀였다는 것도 약점이였고....)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1990), [로보트 태권브이 90] (1990) 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박남정과 공연한 [새앙쥐 상륙작전] (1989)에서는 강민경이 아닌 극 중 캐릭터 하제니로 나왔는 데, 당시 미성년자라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90년대 MBC [베스트 극장]에서 신혼부부로 출연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는 데,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송나영 (1974년 6월 2일 ~ )
송나영은 출연했던 드라마보다 서울우유 요플레 퀸 광고가 더 기억난다. 전부 하나 밖에 안 남은 요플레를 뺏어 먹으려고 두 자매가 잔머리를 굴리다 실패하는 내용인 데, 당시 광고심의에서 '뺏어 먹으려는 쪽이나 끝까지 안 주는 쪽이나 똑같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26세에 결혼해서 연예계를 떠났다가 몇 년 전부터 간간히 토크 쇼에 출연했는 데, 본인은 너무 일찍 결혼해서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너무 아기같은 얼굴이라 연예계에서 오래 버티진 못했을 거다. 차라리 아예 다른 분야에서 일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영수씨의 뒤늦은 부고를 듣고, 추억을 정리하는 뜻에서 70~80년대에 활약했던 어린이 배우에 대해 적어봤다. 성인 연기자로 꾸준히 활동을 한 배우(손창민, 이민우 등)나 불미스런 사건/사고에 연류된 배우(천동석, 정명훈 등)는 제외했다. MBC [사춘기] (1993~1995)와 KBS [맥랑시대] (1991)에 출연했던 이진아(1975년 ~ )도 써보고 싶었는 데, 자료가 없어서 포기했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어릴 때는 나이에 맞게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뛰어들었다면, 스타라는 환상에 빠지지 말고 배우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하고 커리어를 쌓는 게 차선이다. 이 때 정말 자신이 언제까지 연기를 하고 싶은지, 언제까지 불러줄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고민해야한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떠나야만 할 날이 온다는 걸 생각해서, 제2막을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주위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귀엽다고, 잘 나간다고 덮어놓고 출연시켜서 이미지를 소모하거나, 자식이 번 돈을 자기 돈처럼 쓰는 인간 기생충들이 너무나 많다. 어린 시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들이 지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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