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정통성에 집착하는 걸까? TV 통신



어제 [수요 미식회]를 보았는 데, 일주일 전 예고편을 보고 예상했던 멘트가 그대로 나와서 쓴웃음을 지었다.
초대손님으로 나온 요리연구가 심영순은 이런 말을 했다.
"원래 우리나라 떡은 슴슴한 데, 요즘 젊은이들이 과자와 케이크를 좋아해서 떡도 달게 만든다."
여기에 고정 패널인 황교익은 적극 장단을 맞춘다.
달게 만든 떡이 싫으면, 자기가 그런 떡을 만들어 팔지 왜 저딴 소리를 하는 걸까?
이런 불만은 이전부터 거의 매회 나왔다.
황교익은 늘 달고, 짜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을 비난하며, 우리 전통의 맛이 사라진다고 불평한다.
음식점 사장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들의 입맛을 따르는 것 뿐이다.
그런 맛이 싫다면, 자기가 싱거운 음식을 내놓는 식당을 차리거나 집밥만 먹으면 된다.

황교익이나 다른 전통주의자(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들이 생각하는 '전통'의 맛은 무엇일까?
'전통'이라는 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
황교익이나 심영순이 그리워하는 전통 우리 떡도 처음에 나왔을 때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것이였을 것이다.
(황교익조차 [수요미식회]에서 '지금 먹는 배추김치의 역사는 길어야 100년'이란 발언을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떡이나 음식은 결국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먹었던 추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우리 때는 안 그랬는 데, 요즘 젊은 것들은 틀렸어"라고 투덜거리는 꼰대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꼰대들이 요식업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어릴 때 하이텔 [무예사랑 동호회]에서는 끊임없는 정통무예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인은 한국 전통(?) 무예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근본주의자들은
'한국인은 한국인 체질에 가장 맞는 한국 무예를 배워야 하며, 일본무술을 배우는 건 매국노'라는 주장까지 했다.
그분들 주장에 따르면, 사물놀이나 한국어를 배우고, K-Pop과 한국드라마를 즐기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영혼을 판 매국노인가?
당시 무예동 회원 중 한 분은 젊어서는 태권도를, 나중에 중국권법을 배우셨는 데, 저술활동과 후학양성을 하고 계신다.
이 분은 '한국인들에게는 인도에서 발생한 요가보다는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중국의 기공이 몸에 맞는다'는 주장을 했다.
중국도 땅이 넓어서 기후가 천차만별인 데, 서부나 남동부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중국 기공이 몸에 맞을까, 안 맞을까?

범위를 더 넓혀보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재벌의 세습경영을 비판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한다며 부의 대물림을 비난한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 중 하나인 '출생의 비밀'을 볼 때 시청자들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불의의 사고로 부유한 친부모와 이별하고 가난하게 자란 주인공은 부유하게 성장한 자신의 라이벌보다 선하고 유능하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친부모에게 진짜 자식(!)으로 인정받고, 빼앗겼던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회복한다.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인들의 정통성(또는 혈통, 명분)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일찍부터 중앙집권이 정착된 사회 시스템 때문일까, 아니면 유교문화 때문일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이런 집착은 현실파악을 방해하고, 독선을 불러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