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돌아온 여배우들... TV 통신



요즘 막장 드라마를 보면,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서 드라마 작가들을 집어넣고 싶다.
거기에는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있어서 사람들이 본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반복하는 데다 막장이 아닌 드라마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예전에는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왕년의 여배우들이 억척스런 엄마 역할로 나오는 건 꽤 재미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돌아온 황금복]의 이혜숙인 데, 10년 전이라면 이휘향이 맡았을 법한,
'내 새끼를 위해서는 뭘 해도 괜찮다'는 한국 엄마들의 특징을 극한으로 끌고 간 나쁜 엄마를 연기하는 게 흥미롭다.

젊은 시절 미모가 워낙 출중해서 MBC 입사하자마자 주연급으로 연기를 했는 데, 신인치고는 무난한 연기를 처음부터 보여줬다.
[여인열전 - 장희빈]에서는 인현왕후, 후속작 [여인열전 - 은장도]에서는 과부가 되어 아들에 헌신하는 열녀로 출연했는 데,
몇 년 후 출연한 [물보라]까지 3편 모두 유인촌이 남편으로 나온 것도 특징이다.
이혜숙이 지금 보여주는 악녀 연기는 그녀가 전성기 시절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을 맡았기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장희빈]에서는 선배 이미숙의 포스에 눌렸지만, 후속작 [은장도]는 단독 주연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는 데,
전작에서 맡은 핍박 받는 정실 부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온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본다.

시집 가기 직전에 정혼자가 죽어서 수절 과부가 된 이혜숙이 지나가던 벼슬아치에게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자,
벼슬아치(영의정쯤 되는 듯)는 한 번 더 재가할 기회를 준다는 서류를 써준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완전한 처녀가 아닌 이혜숙에게 혼담이 올리가 없고,
유일하게 청혼을 한 집안은 시어머니가 지독해서 시집 간 며느리가 다시 도망친 전력이 있다.
친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지만, 남편 유인촌은 아들을 남기고 요절하고 다시 과부가 된 이혜숙은 아들을 훌륭히 키워낸다.

이혜숙의 연기도 좋았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시어머니를 맡은 반효정이다.
흔히 무서운 시어머니하면 김용림을 떠올리는 데 김용림이 버럭해도 뒤끝은 없는 캐릭터인 반면,
반효정은 오버 액션 없이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싸늘한 시어머니를 리얼하게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의천도룡기]를 찍으면, 멸절사태는 반효정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 잡아 먹더니 아들까지 잡아먹냐'고 이혜숙을 닦달하지만, 뒤늦게 며느리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은장도]는 [전설의 고향]에서 단막극으로도 나왔는 데, 핵심이 고부갈등이니 만큼 연속극으로 만드는 건 무리였다고 본다.



이혜숙이 젊은 시절 순종적인 여인을 연기하다 중년 이후 악녀에 가까운 엄마를 맡았다면,
차화연은 전성기에는 도도하고 활달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지금은 자식 걱정만 하는 엄마를 보여주는 게 흥미롭다.
TBC 일일극 [달동네]에서 차화연은 신분상승을 위해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꿈꾸지만 그가 이혼남인 걸 알고
자신이 무시해도 끈질기게 매달리던 이발사 연규진과 부부가 되어서 달동네의 주민으로 정착한다.
MBC 주말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차화연이 남편 남성훈에게 뺨을 맡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데,
뜬금없는 엔딩이였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통쾌하게 여길 정도로 악당 취급을 당했다.
차화연은 동그란 눈에 목소리 톤이 높아서 당시 기준으로는 재수없게 보이는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을 많이 맡았지만,
지금이라면 당당하고 솔직하다고 인기를 얻을 수도 있는 캐릭터라서 시대의 한계를 절감한다.
(하긴 당시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의 3대 죄악은 시부모 안 모시기, 부동산 투기, 나이트 클럽 출입이였으니...)

영화는 안 봤지만, 포스터는 잊혀지지 않는 섹시 스타들이 수더분한 아줌마, 엄마로 나오는 걸 보면 세월 참 빠르구나.

PS. [은장도]에서 이혜숙의 친정 오빠로 나온 배우는 리키 김같은 이국적 외모였는 데, 잠깐 나오다 사라져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