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15일
글쎄, 백 패스가 잘못일까?
한국-토고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프리킥 찬스에서 백 패스를 한 걸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경기를 보지 않은 나로서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마는,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 때의 행동은
축구 팬들에게 (한국 팬들이든 아니든!)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였다고 본다.
백 패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1. 1점을 추가했다면 G조의 다른 팀들과 엇비슷한 성적을 올렸을 때, 16강 진출에 유리했다.
2. 상대팀 토고는 1명이 빠진 상태였는 데도, 시간끌기 작전을 한 건 남자(혹은 스포츠맨)답지 못했다.
3. 목적(승리)가 수단(백패스)를 정당화 할 수 없다.
물론, 한 골을 더 넣었다면 16강 진출에 좀 더 유리했겠지만, 겨우 1점차로 리드하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상태에서 역습을 당할 위험을 생각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였다고 본다.
이런 비판론자들을 보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말이 떠오른다.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출처 : 최동윤의 고사성어 (http://www.sosok.hs.kr/~gosa/)
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에서 보이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를 혐오한다.
또한 거리응원에서 일부(정말 일부라고 믿고싶다) 찌질이들이 보여준 광기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한국팀의 백패스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는지 모르겠다.
백패스를 비난하는 그들에게 묻고싶다.
한국선수들이 아폴로 안톤 오노처럼 헐리우드 액션을 취했나?
한국선수들이 폴 햄처럼 심판의 오심에 기대어 승리를 강탈했나?
만약 백 패스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였다면, 심판이 먼저 제재를 가했을 거다.
가수 김C에게도 질문 하나!
축구선수들의 백 패스가 나쁘다면, 야구선수들의 고의사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건전한 비판은 좋지만, 이런 식의 헐뜯기는 봐주기가 괴롭다.
한국선수들이 프랑스전에서는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경기를 보지 않은 나로서 이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마는,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 때의 행동은
축구 팬들에게 (한국 팬들이든 아니든!)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였다고 본다.
백 패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1. 1점을 추가했다면 G조의 다른 팀들과 엇비슷한 성적을 올렸을 때, 16강 진출에 유리했다.
2. 상대팀 토고는 1명이 빠진 상태였는 데도, 시간끌기 작전을 한 건 남자(혹은 스포츠맨)답지 못했다.
3. 목적(승리)가 수단(백패스)를 정당화 할 수 없다.
물론, 한 골을 더 넣었다면 16강 진출에 좀 더 유리했겠지만, 겨우 1점차로 리드하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상태에서 역습을 당할 위험을 생각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였다고 본다.
이런 비판론자들을 보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말이 떠오른다.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출처 : 최동윤의 고사성어 (http://www.sosok.hs.kr/~gosa/)
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에서 보이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를 혐오한다.
또한 거리응원에서 일부(정말 일부라고 믿고싶다) 찌질이들이 보여준 광기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한국팀의 백패스가 왜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는지 모르겠다.
백패스를 비난하는 그들에게 묻고싶다.
한국선수들이 아폴로 안톤 오노처럼 헐리우드 액션을 취했나?
한국선수들이 폴 햄처럼 심판의 오심에 기대어 승리를 강탈했나?
만약 백 패스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였다면, 심판이 먼저 제재를 가했을 거다.
가수 김C에게도 질문 하나!
축구선수들의 백 패스가 나쁘다면, 야구선수들의 고의사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건전한 비판은 좋지만, 이런 식의 헐뜯기는 봐주기가 괴롭다.
한국선수들이 프랑스전에서는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 by | 2006/06/15 10:39 | 문득 떠오른 생각들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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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안티 한국대표팀의 한국 변론
토고전에서 한국이 역전골을 넣은 후 공을 돌린 플레이를 가지고 말들이 많다. 비겁하다, 스포츠맨답지 않다는 부정적 의견과 이기려고 경기하는 거지, 폼 잡으려고 경기하냐는 긍정적 의견, 아무리 그래도 토고에게 한 골이라도 더 넣어서 이후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놓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월드컵이 일어나면 대개 싸울 일이 없이 다 하나가 되는 우리 민족이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물론 좀 있음 다시 하나로.....more
Fair Play를 요구하는 건 좋지만, Clean Play를 바라는 건 무리인 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승리도 중요하고....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나봐요. (그래도 감정적 반응은 서로 자제했으면 합니다.)
2:1에서 공을 돌려 시간 끌기로 가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문전을 노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는데 공을 뒤로 뺀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야구에서 지나치게 승부만을 의식해 경원사구를 남발할 경우 팬이 떠납니다. 결과적으로 선수들 자신에게 악영향이 되돌아오죠. 토고전의 공돌리기는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프리킥에서 백패스는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플레이였다고 생각합니다.